웹툰 IP·거장 감독·서바이벌…'숏폼 드라마' 시장의 진화 [ST취재기획]

입력2026년 06월 02일(화) 10:30 최종수정2026년 06월 01일(월) 10:20
사진=레진스낵, 에이피 알케미, ENA
[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몇 분 남짓의 드라마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아는 사람만 알던, 보는 사람만 보던 서브 장르에서 메이저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숏폼드라마 시장은 다양한 전략을 앞세워 차별화를 꾀하는 중이다.

회당 10분 이하의 '숏폼 드라마'(숏드라마)는 기존 롱폼 콘텐츠의 공식을 뒤집으며 등장했다. 시장 성장의 배경에는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된 시청 습관이 있다.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등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즉각적이고 짧은 콘텐츠 소비를 선호하는 이용자들이 늘어났다. 반면 1시간 안팎의 OTT 콘텐츠는 피로감을 높였고, 자연스레 숏폼 콘텐츠의 인기가 치솟게 됐다.

이젠 지상파 예능에서도 숏폼 드라마가 주요 소재로 다뤄진다. MBC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 감독, 하하 작가, 주우재 조감독이 의기투합한 숏폼 드라마 '동생이 훔친 내 여자를 다시 뺏기로 했다' 제작기를 선보였다. 예능 프로그램은 어떤 장르보다도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때 낯설게 여겨졌던 숏폼드라마가 대중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짧은 러닝타임에 비해 파급력이 크다는 점은 경쟁에 불을 붙였다. 기존 OTT 서비스는 물론 제작사와 신생 플랫폼까지 숏폼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기존 웹드라마 제작사들 역시 숏폼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추세다.
놀면 뭐하니? / 사진=MBC

'양산형' 넘어 '창작 경쟁 시대'로

경쟁의 심화는 곧 전략의 차별화로 이어졌다. 레진엔터테인먼트의 숏드라마 플랫폼 '레진스낵'은 시장을 주도하는 대표격이 됐다. 자사가 보유한 웹툰 IP를 적극 활용해 기존 독자층을 시청자로 끌어들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실제로 5월 신작 라인업엔 '마녀, 30세' '하얀천사에게 날개는 없다 : 타락소녀' '3XLOVE : 미남은 괴로워' '야화첩' 등 인기 웹툰 원작 작품들이 대거 포함됐다. 레진스낵은 이를 발판삼아 공식 론칭 두 달 만에 가입자 수 10만 명을 돌파하며 빠른 성장세를 입증했다.

기성 감독들의 업계 진출도 눈에 띈다. '거장' 이준익 감독은 첫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을 하반기 공개할 예정이다. 배우로는 정진영, 이정은, 변요한이 합류했다. 영화 '극한직업', 드라마 '멜로가 체질' 이병헌 감독 역시 지난 2월 '애 아빠는 남사친'을 공개하며 숏드라마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출연진 구성으로 차별화를 시도한 사례도 있다. 영화 '괴기맨숀'을 연출한 조바른 감독은 래퍼 스윙스(문지훈)를 주연으로 파격 캐스팅했다. 레진스낵 숏드라마 '광안'에는 스윙스를 비롯해 츄, 성준, 김응수 등이 출연한다. 작품은 2년 연속 레진코믹스 로맨스 장르 1위를 기록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스윙스는 극 중 세자 이현(성준) 곁을 지키는 호위무사 남휼 역을 맡았다.

급기야 숏드라마 시장의 경쟁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까지 확장됐다. 지난 15일 첫 방송된 ENA '디렉터스 아레나'는 감독들이 숏드라마 연출 실력을 겨루는 포맷으로 구성됐다. 신드롬급 인기를 끌었던 웹드라마 '에이틴' 시즌1·2 한수지 감독, 'BL계 봉준호' 양경희 감독, 그룹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정주 감독 등이 참가했다. 여기에 현직 배우 이주승, 이유진, 최귀화, 하수호, 이범규, 안미나가 합류하며 감독으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디렉터스 아레나' 홍보를 맡은 김혜진 PD는 "숏드라마가 치정, 막장, 저렴하게 제작된 콘텐츠로만 소비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며 "해외에서 인기가 촉발됐다 보니 '중국형 드라마'라는 인식이 강한 편이었다. 비슷한 콘텐츠를 찍어내는 방식으로만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실력 있는 감독들의 영역 확장도 가능했다. 김 PD는 "영화계가 침체되면서 활동을 못하고 있는 감독님들이 계신데, 이분들을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사실 '감독들의 서바이벌'이란 점에서 어려움을 느끼신 분들도 많았다. 그래도 여러 감독님들, 특히 신인 크리에이터 분들께서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셨다"며 "이런 환경 자체가 낯설 수 있는데도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숏드라마 시장 안에서도 성숙한 창작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짚었다.
디렉터스 아레나 / 사진=ENA

빠른 편집·강한 자극…숏드라마의 진화와 과제

콘텐츠 제작사 또한 역시 숏드라마 시장 공략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제작 역량과 투자 확대에도 힘을 쏟는 분위기다. 영화·TV 프로그램 제작사 에픽스톰 오서영 대표는 "기존 드라마와 숏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는 '편집 호흡'"이라며 "대중들이 짧은 콘텐츠과 핵심만 압축한 편집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조금만 지루해도 이탈이 빠르다는 점을 체감했다. 숏드라마는 느슨함 없이 굉장히 빠른 호흡으로 편집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알고리즘 중심 플랫폼 환경 역시 제작 방식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 대표는 "유튜브 등의 알고리즘에 콘텐츠를 노출되게 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작품 론칭 후에도 계속해서 시청자가 유입될 수 있도록 신경 쓴다"며 "실력 있는 작가들이 시장에 유입되면서 제작비 규모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업계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만 급성장 이면에는 한계와 우려도 공존한다. 짧은 분량 탓에 서사의 깊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며, 유사한 설정과 전개를 반복하는 콘텐츠 범람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자극적인 소재 경쟁과 불안정한 수익 구조 역시 시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들이 긴 호흡의 영상을 점점 버거워하고 있다. 숏드라마는 이런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콘텐츠"라며 "다만 해외에서 먼저 활성화된 만큼 국내는 한 템포 늦게 성장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새롭게 떠오르는 시장에는 언제나 많은 자본과 인력이 몰리며 과열 국면이 나타난다. 이후 거품이 빠지는 과정을 거쳐 시장이 완전히 사라질지, 하나의 장르로 안착할지가 결정된다"며 "숏드라마 역시 과열과 냉각을 반복할 가능성은 있지만, 기존 롱폼 콘텐츠와 공존하며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적으로 콘텐츠 소비 호흡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만큼 규모는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성장 초기에는 자극적 소재와 빠른 전개를 앞세운 콘텐츠들이 주목받았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꾸준히 나와야 한다. '가볍고 자극적인 콘텐츠'란 인식을 넘어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며 "기존 드라마 시장과 마찬가지로 연출과 서사, 연기 등 완성도에 대한 고민이 중요해질 것이다. 숏드라마만의 새로운 문법과 플랫폼 환경을 빠르게 이해하는 제작자들이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숏드라마 시장은 더 이상 일시적인 유행이나 틈새 콘텐츠에 머물지 않고 있다.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소비 방식과 플랫폼 변화, 제작 시스템의 진화가 맞물리며 하나의 독립된 산업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다만 성장 속도가 가파른 만큼 자극적인 소재 경쟁과 획일화된 서사 구조를 넘어서는 과제가 남아 있다.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는 콘텐츠는 '속도'보다 '밀도'를 갖춘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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