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 이럴거면 '레베카' 하질말지 [st스페셜]

입력2015년 12월 07일(월) 08:38 최종수정2015년 12월 07일(월) 12:04
뮤지컬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의 김윤아 /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의 김윤아 /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스포츠투데이 박보라 기자] 뮤지컬의 대중화가 이뤄졌다 해도 대극장 뮤지컬을 쉽사리 관람할 수 있는 관객은 여전히 일부다. 유명한 작품의 좋은 자리를 예매하려면 공연이 시작되기 약 3개월 전부터 피켓팅(피말리는 티켓팅)을 해야만 좋은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고 10만원이 훌쩍 넘는 티켓 값도 적잖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뮤지컬 팬들은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배우나 가수들의 뮤지컬 진출을 불안해한다. 덕분에 이들의 뮤지컬 도전은 훨씬 더 엄중하고 냉정한 잣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정정당당하게 쉽지 않은 상황을 극복하고 편견을 깬 이들은 무대와 무대 밖에서 각기 다른 매력으로 활보하며 도전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얻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우림의 김윤아가 뮤지컬 '레베카'를 통해 첫 뮤지컬 도전 소식을 전해왔을 때, 그가 가진 가창력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색다른 댄버스 부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졌다. 누가 뭐래도 김윤아가 아닌가. 김윤아 만의 서늘하고도 감성을 콕 찔러주는 날카로움은 집착에 사로잡힌 댄버스 부인의 이미지를 상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김윤아의 뮤지컬 첫 공연날인 지난 4일에 벌어졌다. 김윤아는 공연이 시작되기 하루 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난 달부터 벌써 4주 이상 후두염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대에 예정대로 설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평소대로 소리를 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고 리허설을 보신 관계자 분들께서도 공연을 취소해서 여러분과의 약속을 어기기보다는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최선을 다 해 보고 싶다는 저의 의견을 존중해주셨습니다"라는 글을 게재하며 컨디션 난조를 밝혔다. 여기에 눈치 없는(?)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는 김윤아의 글을 리스타그램(공유하는 것)하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김윤아의 솔직한 글은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심각한 건강 상태에서 무대에 오르니 다소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이해해 달라'라는 뜻으로 읽힌다. 여기서 짚고 나가야 할 문제는 바로 '레베카'가 김윤아의 단독콘서트가 아니라 뮤지컬이란 것에 있다. '레베카'는 김윤아가 맡은 댄버스 부인이 러닝타임 내내 혼자 끌어가는 극이 아니다. 복잡하게 얽힌 스토리를 긴장감 넘치게 풀어가는 '레베카'는 댄버스 부인 뿐만 아니라 막심, 나(I) 등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물려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김윤아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만 할 '의무'가 있고 완벽한 작품 속의 한 부품이 돼야만 한다.

관객들은 김윤아의 단독콘서트가 아닌 '레베카'를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심지어 누군가에겐 두 달 전부터 기다려온 첫 공연이었다. 평소 완벽을 추구하는 김윤아가, 김윤아의 댄버스 부인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을 차마 돌려보낼 수 없어 공연을 강행한 것은 십분 이해가 가나 4주나 지속된 컨디션 난조로 '제 실력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양해를 미리 구하고 무대에 오른 것은 프로답지 못했다.

이날 김윤아의 '레베카' 공연의 티켓 오픈은 무려 10월6일에 진행됐다.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한 170분, 그리고 가장 좋은 자리의 티켓 가격은 14만원이었다. 김윤아의 안 좋은 목 상태를 '밑밥'으로 깔며 비싼 티켓 값과 시간을 투자한 관객들에게 '아쉬운 부분을 이해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까. 김윤아의 좋지 못한 컨디션이 비록 그날뿐이라 해도 대부분의 관객들에겐 그날이 바로 '레베카'를 기억하는 단 하루의 날이 될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컨디션이 안 좋았다면 내려놓아도 됐다. 드물지만 배우의 건강을 이유로 캐스팅이 변경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물론 특정 배우를 보고 예매한 관객들의 아쉬움은 크나, 적어도 작품 전체를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첫 공연이 끝난 이후 김윤아의 스케줄은 변동됐다. 김윤아는 아쉬운 공연이 끝나고 또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에 어제 무대에 설 수 있었습니다. 아직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어서 만족스러운 소리를 들려드릴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갈채를 보내주신 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무리해서 일정을 강행하다가 장기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만드는 것 보다는 죄송스럽고 아쉽지만 당분간 몸을 회복시키는 데 주력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색다른 댄버스 부인의 모습이 가득한 김윤아의 인스타그램을 훑어보다 문득 '레베카' 속 불길에 사로잡힌 댄버스 부인이 생각났다. "그냥 네가 안보면 될 것을"이라면서 서늘한 비웃음을 날리고 있는 댄버스 부인이.


박보라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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