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태형 기자] 배우 임수정은 20대 때 느꼈던 연기의 재미를 다시금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연기 욕심이 생겼다"며 당분간 이 에너지로 쉴 틈 없이 쭉 달려갈 것이라고 해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하게 했다.

임수정의 가슴을 뛰게 만든 작품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극본·연출 강윤성)은 1977년, 바닷속에 묻힌 보물선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근면성실 생계형 촌뜨기들의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담았다.

OTT 시청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파인: 촌뜨기들'은 디즈니+ 한국 콘텐츠 중 30일 연속 시청 횟수 1위를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뒀다. 데뷔 후 처음 OTT 작품에 참여한 임수정은 "작품 자체도 좋은 반응들을 많이 들려주시고 출연했던 배우들 모두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다 좋아해 주시고 또 제가 맡은 양정숙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를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어떤 부분이 끌려 작품을 선택했는지 묻자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제작사 대표님이 원작을 봐달라고 하셔서 봤다. 웹툰 원작을 보고 감독님이 각색하신 시리즈화된 대본을 보게 됐다. 요청을 해 주셔서 봤는데 정말 재밌더라. 원작도 원작대로 재밌지만 감독님이 각색하신 버전이 정말 재밌었다"고 답했다.

임수정은 극 중 흥백산업 천 회장(장광)의 부인 양정숙으로 분했다. 1970년대 부잣집 사모님이라는, 시대상이 돋보이는 캐릭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벽하게 표현했다. 특히 경리 출신으로 흥백산업 회장 후처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라는 설정답게 내면에 품은 강한 야욕을 드러내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원작의 양정숙이 악하고 돈에 눈이 먼 인물로 그려졌다면, 임수정이 표현한 양정숙은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이에 대해 "원작 속의 양정숙은 제가 느끼기에도 더 악독하고 무시무시한 면이 많은 사람이더라. 그래서 감독님께 제가 어떤 연기를, 역할을 하면 되는지 여쭤봤는데 거친 남자들 앞에서도 기세가 밀리지 않고 정말 현란하고 논리적인 언변으로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원한다, 그런 양정숙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저도 한번 같이 이 작품에 참여해서 열심히 연기를 해보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세세한 디테일에 대해 "1, 2회 차 분량을 촬영할 때는 감독님이 '컷' 하신 다음 '눈빛이 좀 착하다'고 하시더라. 저도 이런 역할을 처음 맡아보니까 아직 몰입이 덜 됐었는지 그런 시행착오가 좀 있었다. 그래서 대사 톤도 바꿔보고 메이크업이나 의상처럼 외형적인 부분을 바꾸기도 했다. 감독님과 많은 부분 이야기하면서 양정숙을 만들어갔고, 그 뒤부터는 저도 자연스럽게 몰입이 돼서 그런지 제가 뭘 해도 감독님이 다 좋아해 주셨다"고 말했다.

특히 "양정숙의 대사 하나하나가 좋았다. 그녀의 신념, 욕망이나 감정,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이 모든 것들이 들어 있는 문장이 많기 때문이다. '이리 와서 안아줘', '사랑해줘 평범하게'라는 대사였는데 어떻게 하면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많이 연구하고 고민했다. 또 관석같이 거친 남자들에게 밀리거나 쫄지 않고 딱 자기 할 말을 하는 것도 좋았다"고 전했다.

또한 "연기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던 베테랑 선배님들, 후배님들, 동료 배우님들과 같이 작업을 하니까 저도 저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좋은 계기가 됐던 것 같다"며 "저는 서울 팀이었고 그쪽은 목포 팀이어서 직접 만나서 연기를 하는 장면이 많이 없었지만, 편집한 짧은 영상을 보니까 대본과 애드리브를 넘나들면서 실존 인물들처럼 자기들끼리 속고 속이는 연기를 하고 계시더라. 그래서 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오희동(양세종)에 대한 양정숙의 감정을 묻자 "정숙은 희동을 사랑한 건지, 어디까지의 감정인 건지 감독님께 물어봤다"며 "밀실 애정신까지는 하나의 사건처럼 지나갈 수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숙은 자신도 모르게 희동에 대한 감정을 키웠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극 중 오희동이 선자(김민)를 다방에서 빼내기 위해 돈을 빌려달라고 한 장면에 대해서는 "실이득 다 따져가며 돈 거래하는 정숙이 평소 자신답지 않게 100만 원을 주면서 '그냥 안 갚아도 돼'라고 얘기하는 건 마음이 그만큼 있다는 걸 표현했던 장면 같다"고 설명했다.

임수정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에 대해 "양정숙의 모든 장면이 귀하고 소중하다"며 "양정숙이 중심 서사에 있는 인물이 아니다 보니까 한 회차에 몇 장면이 나오면 거기에 다 쏟아야 했다. 감정도 보여줘야 하고, 가치와 신념도 보여줘야 하고, 서사와 여성으로서의 감정도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모든 장면이 소중하다"고 밝혔다. 다만 그중에서도 "정숙이 관석 일행을 만나러 가서 방에서 자신의 전략을 설명하고 언변을 펼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며 "정숙이 어떤 인물인지를 설득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흥정을 하면서 자신만의 논리로 언변을 펼치는 포스와 영리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어서 저도 준비를 많이 해서 갔다"고 떠올렸다.

임수정에게 양정숙 역은 선물과도 같았다. 이 역할로 임수정은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펀덱스에서 발표한 화제성 1위를 기록했다. 그는 "어? 무슨 일이지? 싶었다. 양정숙이란 인물을 인상 깊게 봐주신 것 같아서 좋다"며 "전체적으로 캐릭터가 잘 보이는 작품이라서 행복하고 그렇게 배우들이 돋보일 수 있게 감독님이 현장에서 연출하셔서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이번이 제대로 보여준 첫 악역이었다며 "그전에 약간 보여드린 게 김지운 감독님의 '거미집'이었다. 그 영화도 1970년대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그 특유의 톤이 잘 나온 것 같다. 이제는 더 다양하게 열린 장르와 캐릭터를 할 수 있겠다. 또 그런 캐릭터들을 보여드렸을 때 봐주시는 분들도 더 관심을 주시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임수정의 대표작 중 하나인 2004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MZ, 젠지 세대에게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작년이 '미안하다 사랑한다' 20주년이었다. 그래서 리마스터링해서 공개됐는데 '지락실'에서 봐주셔서 좋았다. 그때는 '미사 폐인'이란 말을 썼는데 오랜만에 작품이 공개되니까 30~40대도 추억을 되새기며 봐주시는 것 같다. MZ 세대도 새롭게 봐주셨다고 해서 좋았다. 그 친구들이 몰입해서 봐줘서 고마웠다"고 밝혔다.

이어 "저는 다 보진 못했다. 부끄러워서 잘 못 봤다. 제가 저때 이렇게 연기를 해볼 걸이라는 연기적인 부족함이 늘 보인다. 그래서 잘 못 보는데 그때의 감성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되더라.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아직도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임수정은 "요즘 들어 연기가 너무 재밌다"며 "연기가 쉽다는 게 아니라 재밌다. 내가 원래 배우가 잘 맞는 사람이었나를 느끼고 있다. 계속 10년, 20년 더 흥미로운 캐릭터들을 보여주면서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0대 때는 연기가 재밌고 제 모든 삶이 배우로서 가득했다. 하나씩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신인상을 받고, 김지운 감독님, 박찬욱 감독님, 허진호 감독님, 최동훈 감독님, 민규동 감독님을 만나면서 연기도 많이 배웠고 정말 재밌었다"며 "그러다가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난 뒤부터 온도가 미지근해지더라. 그래서 그때는 일에만 몰입하는 게 아니라 내 삶에도 밸런스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자신을 많이 챙겨주며 지내다가 다시금 연기가 재밌어져서 조금 활발하게 해볼까 했던 작품이 2019년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였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 식으로 제가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 많아지는 것도 배우로서 성장하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며 "속도는 좀 느리고 띄엄띄엄 하지만 적당한 타이밍에 내게 재미를 느끼는 작품들이 와주고 있구나란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차기작은 tvN 새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이다. 임수정은 "그것도 재밌고 그 작품에 몰입이 된 상태다. 계속 재밌는 작품,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만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당분간은 그런 욕심이 생겼기 때문에 쭉 밀고가지 않을까. 쉴 틈 없이 달려볼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포츠투데이 김태형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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