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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DB |
고(故) 최불암 배우가 지난 29일, 소천했다. 향년 87세로, 1959년 극단 실험극회의 ‘햄릿’으로 데뷔한 이후 67년간 이어온 연기 인생의 막이 내린 것이다. 더없이 슬프고 안타까운 소식으로 다가오는 건 한국 대중에게 그는 단순히 활동을 오래 이어온 배우 또는 스타 그 이상으로 각별한 대상이기 때문이겠다.
최불암이 맡아온 배역 중 대중에게 강렬하게 각인된 캐릭터는 ‘수사반장’의 박반장과 ‘전원일기’의 양촌리 김회장이다. 실제로 그는 박반장과 양촌리 김회장을 거치며, 사람들에게 그저 작품 속에만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재하는, 실재하길 바라는 좋은 어른이자 아버지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배우로서 연기를 잘해서 얻은 이미지이며 그렇게 얻은 것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 있겠다만, 대중의 이러한 시선은 최불암에게 하나의 부채로 작용했나 보다. 그는 아동복지기관인 초록우산에서 무려 45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연을 맺어 왔는데, 이게 시작된 결정적인 계기가 상당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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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DB |
‘전원일기’에서 최불암이 버려진 아이 금동이를 입양하는 에피소드가 방영된 이후 수많은 시청자들이 격려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입양이라는 개념이 익숙지 않은 시절이기도 했고 이미 해당 캐릭터에 깊이 몰입한 사람들에겐 귀감이 될 수밖에 없었달까. 문제는 최불암이 자신이 마주한 상황에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데 있다.
작가가 만든 인물을 연기만 했을 뿐인데 마치 자신이 대단히 선한 일을 한 사람인 것처럼 대우를 받으니 스스로 위선자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고. 어쩌면 배우로서, 배우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맞닥뜨릴 수 있는 가장 진정성 어린 고민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고민을 고민으로만 끝내지 않았다.
초록우산에서 전국 후원회장을 맡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최대한 많은 도움의 손길을 얻을 수 있도록 자신의 영향력을 충분히 발휘한 것이다. 아울러 소년수형자들의 문화예술교육 활동에도 일조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최불암은 작품 속 인물을 연기하며 느꼈던 부채감을 완벽하게 되돌려 주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모습을, 사는 내내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대중에게뿐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삶이 지침이 되는 거대한 어른으로 남을 수밖에 없겠다. 배우를 넘어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몸소 실천하며 결국 좋은 어른이자 아버지로서 우리 곁에 남은 최불암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스포츠투데이 윤지혜 칼럼니스트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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