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칼럼-김태훈의 불꽃]'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 <5> 폭발하는 물음표

입력2018년 04월 04일(수) 23:39 최종수정2018년 05월 14일(월) 23:00
대만 야구장에서 이상훈 / 사진= 이상훈 제공

불꽃 같은 존재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길을 가며 대신 꿈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덕분에 우리는 안전한 일상 속에서 짜릿한 행복과 처절한 좌절 같은 인생의 재미를 맛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꽃 인생들을 오롯이 기억함으로써 그 빚을 갚아야 하지 않을까? 첫 번째 불꽃 인생의 주인공은 엘지의 야생마 이상훈이다.

5. 폭발하는 물음표



서울고 시절 상훈은 크게 주목 받는 투수는 아니었다. 왼손잡이 투수가 귀한 시절 야구 명문 서울고에 주전으로 뛰던 왼손 투수 정도였다. 그나마 주목 받게 된 건 3학년 때인 1988년 서울고가 봉황대기 결승에 오르면서였다. 경기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당시 '초고교급'이라고 평가 받던 팀은 유지현(2학년)이 있던 상대 팀 충암고였다. 서울고는 분전했지만 9대0 큰 점수차이로 졌다.

◆ 어떤 연습게임

1988년 봉황대기 결승전. 글러브 낀 선수가 이상훈 / 사진= 이상훈 제공



당시 야구 잘하기로 이름난 대학은 고려대와 연세대를 비롯해 동국대, 한양대, 단국대, 건국대, 동아대 등이었다. 다들 지옥에서도 데려 와야 한다는 왼손 강속구 투수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고 3학년 이상훈은 투구폼이 깔끔한 왼손 투수이긴 했지만 강속구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스카우트를 해야 할 입장에서는 좀 아쉬운 대목이었다. 특히나 몸집 자체가 깡말라서 볼끝에 힘이 부족했다.

코치진도 상훈의 마른 체형이 늘 걱정이었다. 고3 올라가는 겨울 코치는 상훈을 동계훈련에서 열외시키고 보름 간 휴가를 보낸다. 특명이 떨어졌다. '살 찌워서 나타나기.' 구체적으로 매일 돼지고기를 먹고 자기 전에 막걸리를 한 잔 이상 마셔야 한다는 지침도 뒤따랐다. 학생 신분이지만 막걸리를 마시게 한 건 일찍, 그리고 깊게 자야 살이 찔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름간의 특훈(?)도 깡마른 상훈에겐 별무소득이었다. 아무리 먹고 마시고 자기를 반복해도 체중은 그대로였다.

3학년 어느날 휘문고랑 연습게임이 잡혔다. 왼손잡이 투수를 찾는 고려대 야구부가 마련한 특별 게임였다. 그때 휘문고에는 왼손잡이로 이광섭 투수가 있었다. 잘 던지기도 했고 파워도 출중했다. 서울고의 이상훈과 휘문고의 이광섭을 마운드에 올려놓고 나름 오디션을 치른 것이다.

게임이 끝난 그날 임수혁의 아버지가 상훈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상훈이를 고려대 보내라"고 설득하는 전화였다. 상훈도 내심 고려대를 선호했다. 고대나 연대팀이 가끔 서울고에 와서 연습을 했는데 상훈 눈에는 고대팀이 좀 더 매력적이었다. 나름 질서정연하고 팀워크도 단단하게 느껴졌다. 훈련도 그 어느 대학팀보다 살벌하게 한다는 전설이 선배들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고려대 최남수 감독이 집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 내용이 뜻밖이었다.

"나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편모슬하에 힘들게 자랐다. 누구보다 네 마음 잘 안다. 고려대로 와서 열심히 하거라."

느닷 없었다. 아니 어떻게 대학교 감독이 아직 입학하지도 않은 고등학생 투수의 집안 사정을 훤히 알고 있단 말인가? 순간 게임이 있던 날 걸려온 수혁 아버지의 전화가 떠올랐다. 임수혁이 1년 전 고려대로 진학했기에 수혁 아버지와 최남수 감독은 이미 잘 아는 사이였다. 수혁 아버지가 상훈의 집안사정을 이미 최감독에게 충분히 설명한 거 같았다. "수혁이 후배 중에 정말 좋은 투수가 있다"고 틈만 나면 칭찬을 했고, 연습게임도 그 선을 보기 위해 마련됐던 것이다. 그날 함께 마운드에 올라 경쟁했던 휘문고의 이광섭은 고려대의 라이벌인 연세대로 진학했다.

◆ 감독 따까리

최남수 감독의 전화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최감독은 상훈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각별하게 챙겼다. 보통 고교 졸업생들은 시즌이 모두 끝난 늦가을이나 겨울 훈련부터 입학이 예정된 대학 야구팀에 들어가 훈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상훈은 가을이 막 시작되던 9월부터 부름을 받았다. 훈련장은 학교가 아니라 일산에 있는 농협야구장이었다. 정기전(고연전 혹은 연고전)을 한 달 앞두고 시작된 합숙훈련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기라성 같은 선배 선수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4학년에 이명수(현 휘문고 감독), 황대연, 3학년에 박동희와 김경기, 2학년에 염경엽, 그리고 1학년에 임수혁 등이 포진해 있었다. 그 자리에 고3 짜리 투수 이상훈이 끼어 함께 훈련을 받았다. 유니폼 없이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지만 그해(1988년) 정기전에서 덕아웃을 지켰다.

최감독의 배려는 입학 후 대학생활 내내 이어졌다. 고대 야구부는 크게 지방 출신 선수들과 서울 출신 선수들로 구분됐다. 서울 출신들은 집에서 다닌다고 '집팀'이라 불렸고, 지방 출신들은 이공대 후문 근처에 있는 연수관을 기숙사 삼아 생활했다. 선수들 눈에 교도소처럼 보였던 연수관에서 야구부는 큰 방 하나와 작은 방 두 개를 사용했다. 작은 방 두 개가 지방 출신 선수들이 사용하는 방이었고 TV가 있던 큰 방은 서울 출신 집팀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이었다.

공간을 사용하는 원칙 중에 하나는 집팀이 작은방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거였다. 지방 출신 선수들이 빨래도 하고 잠도 자며 생활하는 공간이니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서울 출신 상훈은 큰 방이 아닌 작은 방에서 지방 출신들과 함께 기숙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감독의 지시였다. 이유는 '감독 따까리'로 발탁됐기 때문. 학교에 기거하며 감독의 심부름도 하고 유니폼도 빨고 짐과 자료도 챙기는 일종의 비서 자리였다.

물론 핑계였다. 입학하는 과정에 상훈 어머니와 최남수 감독 사이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상당히 오간 것이었다. 어머니가 먼저 이야기한 건지 최감독이 먼저 제안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두 평 짜리 단칸 방에서 다 큰 아들이 어머니와 누나랑 같이 생활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렇게 상훈은 서울 출신이지만 지방 출신들과 함께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대만에서 열린 국제야구연맹회장배 국제야구대회에서 임수혁(가운데)과 함께. / 사진= 이상훈 제공



◆ 혼란의 1학년

금전적으로도 무척 쪼들리던 시기였다. 어머니는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파출부는 물론이고 식당 설거지 일과 보험 및 외판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상훈에게 어머니는 매주 통장으로 5,000원을 송금했다. 용돈이었다. 그마저도 건너뛰는 주가 드물지 않았다. 1989년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900원이었다.

상훈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난생 처음 가족과 떨어져 생활했다. 한 번씩 합숙하는 것과 아예 떨어져 생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일과 시간이 끝나고 잠자리에 누우면 오만 감각이 다 깨어났다. 마치 달팽이의 촉수처럼 낯선 사람들과 낯선 환경을 두려운 마음으로 탐색했다. 귀가 열리면서 미처 몰랐던 세상의 온갖 이야기들이 상훈의 마음판을 두들겼다.

동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세상은 지금껏 상훈이 살아왔던 세상과는 너무 달랐다. 상훈에게 그 세상은 너무 밝았고, 또 활기찼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폭력과 끝이 보이지 않는 궁핍의 터널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고향집에서 부쳐주는 용돈 액수도 비교 불가였다. 동료들이 외출 나갔다 돌아오면 손에 한두 개씩 고가 상품들이 들려 있었다. 상훈에겐 몇 달치 용돈을 모아도 살까말까 한 것들이었다.

문득 고3 때 신길동 옥탑방 살던 시절이 떠올랐다.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은 어느 날 단칸방에서 잠 자던 세 식구가 한꺼번에 연탄 가스를 마신 것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어머니는 동네 구멍가게를 기어가다시피 해서 사이다를 구해와 딸과 아들을 마시게 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상훈은 하루종일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날 학교에서 감독님께 사정을 말씀 드리고 훈련에서 빠져 쉬었다.

위기는 모면했지만 그 뒤가 더 문제였다. 날이 지날수록 그날 사고는 상훈에게 짙은 수치심을 안겨줬다. 1988년은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였다. 외국인 관광객들 보기 부끄럽다고 정부가 앞장 서서 빈민촌을 밀어버리던 시대였다. 친구들 중에 연탄 때는 집에 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감독과 코치에게 "연탄가스를 마셨다"고 이실직고한 것도 부끄러웠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발가벗은 느낌이었다.

대학 1학년 때 대만으로 전지훈련을 가게 됐다. 전체 경비야 학교에서 나오겠지만 군것질이라도 하려면 용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상훈의 통장엔 그만한 돈이 쌓여 있지 않았다. 출국하기 이틀 전 수혁이 상훈을 불러냈다. 학교 앞 주점에 앉아 파전 하나를 시켜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던 중 수혁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내가 지금부터 무슨 이야기를 할 건데, 듣고 열받아도 나 때리지마라. 알았지?"

그러면서 돈 봉투를 하나 건네는 게 아닌가. 수혁의 아버지가 따로 준비한 것이었다. 수혁은 상훈의 자존심을 혹시 건드렸을까봐 그렇게 노심초사 했다. 수혁 아버님이 챙겨주신 것이라 받긴 받았지만 상훈은 혼란스러웠다.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물음표들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왜 나만 가난할까?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왜 하필 나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둑이 터진 물음표들은 걷잡을 수 없어 쏟아져 나왔다. 무심한 척 억눌렀던 감정들, 비에 흠뻑 젖으며 가까스로 식혔던 울분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상훈은 어머니를 찾아가 막무가내로 따졌다.

"엄마, 난 누구야? 내가 아버지 아들 맞아? 엄마 아들 맞아? 증거 있어?"

어머니는 크게 당황하지 않고 장롱 구석을 뒤졌다. 그리고 누렇게 바랜 서류 뭉치를 상훈에게 건넸다. 하나는 상훈을 낳았던 병원에서 받은 영수증이었다. 또 하나의 서류는 출생신고서였다. 원래 70년생인데 죽을 뻔한 고비를 잘 넘겨서 1년 뒤인 71년 그날에 출생신고를 하게 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서류를 확인했다고 잠잠해질 물음표가 아니었다. 2학년이 되면서 이 물음표들은 임계점을 향해 치달았다.

6편으로 이어집니다.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 ① 소년, 야구를 만나다 다시보기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 ② 야구가 즐거웠던 신길화랑 다시보기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 ③ 폭풍우의 시작 다시보기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 ④ 비가 내리면 다시보기







김태훈 작가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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