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배우 김래원이 '보통 남자'가 됐다. 이별에 아파하고 숙취에 괴로워하고 그러면서도 조심스레 새 사랑에 다가서는 그런 '보통'의 현실 남자. 이를 공감하고 연민하며 자연스레 담아낸 김래원이다.

멜로 가뭄 현상이 여전한 한국 영화계에서 발칙하고 솔직한 현실 공감 로맨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감독 김한결·제작 영화사 집)의 등장, 여기에 이미 TV드라마로 입증된 로맨스 장인 김래원이 남주를 맡았으니 꽤 반가운 일이다. 로맨스 장인이란 수식어에 영 쑥스러워하는 김래원은 "영화로는 로맨스물이 아주 오랜만이긴 하지만, TV에선 꾸준히 해왔던 거라 늘 하던 대로 연기했다"며 겸손이다.

그래도 '가장 보통의 연애'는 조금 다른 느낌의 로맨스였다. 작은 설정 하나하나도 너무나 리얼하고 디테일했다. 오히려 그 점이 기존 로맨스물과는 달리 차별성이 있었다. 막상 배역을 맡으려니 부담도 됐다.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남녀 배우의 호흡이 영화의 핵심이라 생각했다"는 그는 대본을 읽을 때부터 상대 역할로 자연스레 공효진을 떠올렸단다. 마침 공효진이 출연을 확정했고, 김래원도 주저 없이 "OK"를 외쳤다.

드라마 '눈사람' 이후 16년 만에 한 작품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이다. 공효진과 함께 작업하게 돼 설레고 기대감도 컸단 김래원은 "공효진은 16년 전에도 연기를 정말 잘했다. 이번에도 연기하며 새삼 다시 깨달았다. 대사나 상황들을 자신에 맞게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 능력은 정말 최고인 것 같다"며 "저도 그런 연기를 추구하는 사람인데 이미 초반 촬영할 때부터 그런 표현력이 정말 좋더라"고 했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는 두 사람의 호흡이 중요했기에 다른 때보다 말을 아끼며 들으려 노력했단 김래원이다. 하지만 그런 제게 공효진은 "많이 점잖아지고 과묵해졌다"고 했다며. 김래원은 "제가 의견을 내고 설득하기보다 들으려 했고 이를 끝까지 지켰다"고 해명(?)하며 제 연기의 아쉬운 부분도 공효진이 채워줄 만큼 호흡과 조화가 좋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또한 이는 "우리 두 배우를 믿고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감독님"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김래원은 극 중 전 여친에 상처 받아 이별의 후유증을 늘 술로 달래는 재훈 역을 맡았다. 술에 취해 전 여친에 "자니?"를 수도 없이 보내는, 여자들이 질색하는 '구 남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 그다. 그래 놓고 후회하고 아파하는 재훈의 감정을 김래원은 자신과 달라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안타깝다 여겼다.

"공감되고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는 그는 "하지만 지질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재훈이 여린 거고, 아픔을 달래려고 한 실수였다. 자신의 삶이었고 인생이었기에 본인도 마음대로 안 되는 거겠지. 참 순수하고 그만큼 많이 사랑했던 게 아닐까"라고 했다. 물론 저 같으면 절대 그렇게 하진 않았을 거란다. 그는 특별한 연애론이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감정대로 흐르는 게 좋은 것 같다고. "연애도 사랑도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잖나. 그때그때마다 시기적으로 변화하는 것 같다. 뭐가 맞고 틀린 건 없다"는 그다.

김래원이 연기하며 염두했던 것은 파혼의 아픔을 지닌 재훈의 상처가, 영화가 지닌 유쾌한 톤에 가려지거나 행여 더 돋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적정선을 지키면서 진정성을 전달하는 것이 그가 스스로 수행할 과제였다. 그는 "극은 재훈이 실연의 아픔으로 허덕이고 있는 모습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영화 장르 특성상 무거워 보이면 안 됐다. 너무 쳐져서 가벼워 보이거나 그렇다고 극이 다운되어선 안 됐다"고 설명했다. 개인적으론 초반 술 취해 혼자 걸어가며 전여친에 메시지를 보내다가 넘어지는 장면이 마음에 들었단다. "관객 분들께는 별거 아닌 신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제겐 그 신이 굉장히 큰 의미였다. 어설프고 허당 같아 보이는 넘어짐이었다"고.

매번 숙취로 시작하는 재훈의 아침, 눈을 뜬 그는 매번 다양한 광경을 목격한다. 각종 입간판은 물론 나날이 쌓여가는 옥수수와 뜬금없이 등장한 고양이와 비둘기까지. 이는 영화의 소소하면서도 재치 있는 설정들이다. 이를 "극이 너무 다운되면 안 되니 이를 업시키기 위해 애초부터 설정된 장치들"이라고 설명한 김래원은 "비둘기랑 호흡은 아주 좋았다. 비둘기는 따로 훈련시킬 수가 없으니 반응하는 대로 제가 받아서 리액션한 것"이라며 웃었다. 안타깝게도 고양이는 극 중 재훈이 쫓아내는 장면을 찍는 바람에 초반부터 겁을 먹고 무서워했다고 진지하게 동물들과의 연기 호흡을 전하는 익살스러운 그다.

재훈이 아픔을 달래는 방식을 술로 택한 만큼, 극엔 음주 신이 상당히 줄곧 등장한다. 김래원은 "지인들도 시사회를 보고 '정말 술 마시고 연기한 거지?'라고 문자를 하더라"며 흐뭇해했다. 음주 후 만취 상태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과장된 듯하면서도 유쾌한 공감대를 자아낸다. 막상 김래원은 촬영할 땐 이렇게 웃기는 신인 줄 몰랐단다. 그는 "현장에서도 늘 그냥 제 몫에 충실하려고 한다. 보시는 분들이 그렇게 재밌어하실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작정하고 확실하게 웃음코드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한 신은 오히려 그가 술 취해서 팔이 부러지는 에피소드다. 그는 "다음날 회사에서 또 무뚝뚝하고 어른스럽고 묵직한 남자의 모습을 보이려 일부러 더 그렇게 얘기한다. 바로 다음 상황에서 허둥지둥하는 게 보이니까 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더 근엄하게 연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 자연스러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재훈이 술 먹고 실수하는 것도 참 과한 것 같고 다음날 모른 척 꼿꼿하게 있는 것도 과한 것 같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이처럼 미련에 허우적대며 매일같이 '흑역사'를 무한 반복하는 재훈을 보며 순수함과 안쓰러움을 느끼고, 재훈의 까칠한 듯 하지만 다정한 속내를 자연스럽고 현실감 있게 표현해낸 김래원이다. 그는 요즘 연기를 하며 즐거움을 느낀단다. "즐기면서 하려 하고, 비우려고 노력"한단 그다.

끝으로 그는 낚시론을 펼쳤다. 꼭 연애사가 아니더라도 힘든 일이 있을 때 감정을 잊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은 낚시라는 취미를 활용한다고. 낚시는 평정심을 찾고 제 페이스를 잃지 않게 해 준단다. 예를 들어 드라마가 잘 되고 이슈가 됐을 때 조용히 바다로 가서 한두 달, 길게는 세 달까지 지내고 오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잠잠해진단다. "낚시하면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물고기만 잡는다. 제가 너무 업되지 않게 해주는 꽤 괜찮은 취미"란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김래원은 제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정도를 지키며 살기 위해 여전히 염두하고 노력하는 배우다. 그 성실함과 진중함은 김래원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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