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김태훈 감독은 잊혀진 이야기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다. 그가 거대한 비극의 역사를 스크린에 옮긴 까닭이다.

772명 학도병들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투입됐던 양동작전인 장사상륙작전 실화를 그린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 김태훈 감독은 곽경택 감독과 공동 연출을 맡아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역사 속에 묻힌 사건을 다시 꺼내 알리는 것을 목표로 삼은 김태훈 감독이다. 학창 시절 좋아했던 과목이 역사일만큼,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조차도 장사상륙작전을 처음 알았다. 스치듯 알았을 법도 한데 전혀 정보가 없었다. 제작사 대표에게 이야기를 듣고 이 전투를 처음 알았다. 처음 느낀 감상은 놀라움이었다. 물론 역사 속에는 놀랄만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근현대사에 이렇게 큰 희생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한반도 명운을 가른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이면에 이토록 대단한 작전이 있었다니. "너무 영화적이었고, 일차원적으론 놀랍고 가슴이 뭉클했다"는 그였다.

막상 영화화를 하자니 막연하기만 했다. 밤에 폭풍우 속에 해안과 150m 떨어진 바다를 수영해가며 총탄을 뚫고 상륙해야 하고, 상륙하는 주체도 전문적 군사 훈련을 받은 군사들이 아닌 어린 학생들이다. 한밤 중 비바람과 번개가 치는데 이를 뚫고 어린아이들을 물에 빠뜨려가며 촬영을 한다는 게 가능키나 할까. 너무 답답하고 막연한 게 사실이지만 "표현의 한계가 느껴지니 도전에 자극이 되고,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답을 찾아갔다"는 김태훈 감독이다. 곽경택 감독이 공동연출로 합류한단 것도 그에겐 든든한 힘이 됐다고.

곽경택 감독은 전체적인 드라마와 감정선 묘사를 구축하고, 김태훈 감독은 전투신을 설계하고 표현하는데 주안점을 두며 조화를 이뤘다. "큰 파도를 뚫고 어린 학도병들이 상륙작전을 펼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제겐 큰 과제였다"는 그는 이전까지 '아이리스2: 더 무비' '아테나: 전쟁의 여신' '포화속으로' 등 거대한 스케일과 전투신을 구현해온 감독이지만, 이번 영화는 자제하며 조율했다. 영화 기획 단계부터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장사상륙작전에 참여했던 처절한 희생의 넋을 기리는데 초점을 맞췄고 이를 그대로 구현하는 리얼함이 그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그는 "너무 잘 싸우거나 능숙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됐다. 학도병들은 미숙하지만 뜨거운 애국심 내지는 처절한 그들의 당시 심정이 전투신에 녹아들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그래서 현실성 있고 리얼리티가 극대화된 시퀀스를 만들려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실제 장사상륙작전 참전 용사들과 유족들을 만난 경험과 기억이 그에게 남다른 사명감을 심었다.

"이런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상업영화란 틀에서 만들다 보니 경우에 따라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하잖나. 역사를 왜곡하거나 폄하하거나 다른 해석을 가공해서 집어넣어선 안 됐다"는 그는 "생존자 분들의 손을 한번 잡고 눈을 보면 정말 잘 만들어야겠단 힘이 생겼다"고 했다. 뭉클하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영화를 하며 기교를 부리거나 장난을 친다는 것은 스스로도 용납이 안 됐다. 그래서 제 장기인 화려한 전투신 구현을 모두 버린 감독이었다.

영화화된단 소식을 알리자 그저 말없이 손을 잡아주며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건네는 그분들의 잔상은 영화를 찍는 내내 아른거렸다. 실제 전투가 벌어진 장사리 해변을 찾았을 때, 공간이 주는 압도적인 묵직함도 연출을 하는데 도움이 됐다. 그런 기운들이 촬영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됐던 것 같다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사명감은 영화에도 고스란히 담겨 진심과 울림이 전해진다.

김태훈 감독은 "실제로 폭풍우 때문에 배가 좌초되고, 수영을 못해서 물에 빠져 죽은 학도병들도 많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 학도병들이 해안에 닿을 수 있도록 직접 밧줄을 묶은 선장과 선원들도 실제 역사 속에 있던 내용"이라며 "772명 학도병들의 처절하고 치열한 희생과 더불어 이같은 기간병들과 선장, 선원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들의 희생도 가치 있는 희생임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사람 목숨은 정말 소중하지만, 누군가는 희생을 필요로 했다. 우리는 그런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다는 것을, 그 희생의 가치를 제대로 봐주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촬영하며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10월에 크랭크인 해 1월에 끝내야 하는 스케줄에, 유닛을 나눠 연달아 쉼 없이 촬영했다. 날씨에도 마음을 졸이고, 어쩔 수 없이 촬영을 강행해야 했는데 신기하게 해가 없어야 하는 신을 촬영할 땐 구름이 와서 가려주고 비가 와선 안 되는 신에선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음에도 해가 떴단다. 한 번도 날씨가 어긋난 적 없이 프로덕션이 마무리가 됐다. 이를 두고 감독은 "어떤 영적인 힘이 든든하게 뒤에서 도와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마음을, 진심을 담아 만든 결과물이 많은 사람과 만나길 희망하는 감독이었다. 영화를 연출하기로 결심했을 때의 기조를 흐트러짐 없이 갈 수 있게 돼 가장 기쁘다는 그는 작품의 성공을 우선하지 않았다. 그저 "검색창에 인천상륙작전을 치면 장사상륙작전이 연관될 만큼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다면, 그건 천만 관객 이상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희망했다. 역사를 좋아했던 어린 학생이, 좋아했던 과목 속에도 담겨 있지 않은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성인이 돼 알게 됐고 그 가치를 일깨우는데 일조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뿌듯하다고.

이같은 희생과 역사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자 당연한 의무라 말하는 그는 누구보다 가치로운 일을 해낸 참이었다.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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