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최초의 최초다. 언어와 인종의 장벽을 뚫은 한 아시아인 여성 제작자가 ‘아카데미’의 작품상 수상 소감 마이크를 잡으며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숱한 여정을 거쳐 온 제작사 바른이애엔이의 곽신애 대표의 이야기다.

‘기생충’은 10일 미국 LA에서 진행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 영화로써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또 각본상과 국제장편영화상도 함께 받으며 4관왕의 위엄을 알렸다.

먼저 아카데미 이후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곽신애 대표는 “이상한 일이다”면서 벅찬 소감의 첫 마디를 열었다. 이어 그는 “사무실에 아카데미 트로피를 진열했다. 트로피를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시상식 당시 우리에게 작품상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진짜 받으니 이상하다. 실제로 굉장히 무겁다. 대략 3.5kg 정도다. 너무 무거워서 시상식을 마치고 나서 누가 들어줬으면 좋겠더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아시아 여성 프로듀서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이다. 수상 당시 곽 대표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너무 기쁘다. 이 순간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그리고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인 기분이 든다. 이 같은 결정을 해주신 아카데미 회원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후 곽 대표의 수상 소감에 많은 이들이 환호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이를 두고 곽 대표는 “소감 준비는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그저 딱 한 마디만 하고 싶었다.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우리가 상을 받는다는 것은 아카데미의 각자의 큰 결단이 모인 것이다.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표하자는 마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곽 대표는 이른바 ‘오스카 레이스’라 불리는 영화 홍보 프로모션 일정을 떠올리며 “각종 비평가협회에 후보로 오르고 나니 점점 반응이 더 커져가는 느낌이었다. ‘기생충’이 천만 관객, 칸의 황금 종려상 등 검증된 부분이 많지 않냐. 현지에서 반응 역시 뜨거웠다. 가는 곳마다 봉 감독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몰린다. 봉 감독을 찾으려면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을 가면 됐다. 시상식 시즌의 톱스타이자 인기 넘버 원은 봉 감독이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길고 긴 대장정이었던 ‘오스카 레이스’를 봉준호 감독과 함께 달려온 만큼 그가 무대에 오르는 그 순간은 참 영예롭고 빛나는 장면으로 기억될 터. 특히 충무로 101년 역사상 초유의 영광을 안았음에도 곽 대표는 겸손한 모습으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렇다면 곽 대표는 자신에게 무한한 영광을 선사한 ‘기생충’의 시나리오 첫 인상을 어떻게 기억할까.

“봉준호 감독과는 2013년부터 간단하게 작품 구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차기작은 가족 소재로, 사이즈는 ‘마더’ 정도라는 간단한 설명을 했었다. 이후 ‘기생충’ 시놉시스를 2015년 10월에 받았다. 대본의 첫 인상은 되게 재밌었다. 인물이 다 강하고 정확하고 선명했다. 다 개성이 넘쳤다. 유머러스한 코드도 있었다.”

그러면서 곽 대표는 봉준호 감독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봉준호 감독은 예산과 계획 내에서 합리적으로 그림을 담을 줄 아는 정확한 연출자였다. 그간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 국내서 작품성과 대중성까지 모두 거머쥐었던 봉준호 감독. 곽 대표는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이지만 국내 관객 천만 돌파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노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개봉을 맞이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길 거라 생각을 했다. 이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 국내에서 예매율이 엄청나다는 얘기를 듣고 천만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안도했다. 기본적인 숙제를 끝낸 느낌”이라 표현하기도.

곽 대표와 봉 감독은 작업을 이어가는 동안 한 번도 장면 설명이나 상징에 대한 의미 부여와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비하인드가 이어졌다. 곽 대표는 이를 두고 ‘이심전심’이라면서 묻지 않아도 아는 ‘우리 만의 느낌’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곽 대표는 “앞으로도 봉 감독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런가 하면 곽 대표에게는 대한민국 최고 영화 제작자 등 거창한 타이들이 붙게 됐다. 이 수식어가 그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사뭇 궁금해지기도. 이를 두고 곽 대표는 먼저 자신의 신념과 철학에 대해 “스스로 돌아봤을 때 단순히 잠깐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영화는 별로 안 좋아한다. 감정의 반향을 이끌어낼 수 있고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소통이 안 되는 것도 싫다. 정말 어렵다. 재미도 있고 작품성도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이야기”라 설명했다.

이어 “작년과 올해 ‘기생충’의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이 일을 해도 되는지 의심이 없어졌다. 아직은 조금 더 해도 되겠다. 스스로에 대해 어느 순간 내가 좋은 제작잔지 모르겠던 시기가 있었다. 참여하며 폐를 끼치지 않을까, 실력이 모자라서 아닐까, 작품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싶은 고민이 많았다. 이번 ‘기생충’에서는 무난하게 멤버로서 열심히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작자로서 꾸준한 담금질과 고민이 있었기에 ‘기생충’이 보다 더 높은 완성도를 자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곽 대표는 앞으로 한국 영화가 보다 더 개성 있고 다양한 영화가 나오길 바란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영화계가 확장되기 위한 조건으로 산업에 참여하는 이들 각자가 합리적인 입장을 내고 조율해야 한다는 이상적인 철학을 전했다.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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