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다소 늦은 나이에 아이돌로 데뷔한 박소진은 이번에도 조금 늦게 배우의 길에 접어들었다. 느리지만 진중한 발걸음을 뗀 그가 연기를 대하는 자세는 겸손하기 그지없다. 느린 발걸음조차 자신의 템포라고 말하는 대기만성형 배우 박소진이다.

박소진은 2010년 그룹 걸스데이로 연예계 데뷔했다. 그는 곡 '기대해', '여자 대통령', '달링(Darling)', '썸띵(Something)'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매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배우가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꾸준히 기회의 문을 두드렸다.

박소진은 이미 스타다. 혹자들은 그가 원하는 작품과 배역을 골라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오디션을 봤으며 고배를 마셨다. 그는 "짧은 시간에 원하는 걸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며 "세상이 쉽지 않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박소진은 마침내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극본 이신화·연출 정동윤)를 만났다. '스토브리그'는 팬들의 눈물마저 마른 꼴찌팀에 새로 부임한 단장이 남다른 시즌을 준비하는 뜨거운 겨울 이야기다. 박소진은 극 중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열혈 스포츠 아나운서 김영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오랜 기다림 속 만난 작품인 만큼 의미도 남달랐다. 박소진은 "스포츠 아나운서 역을 맡은 만큼 노력을 많이 했다. 단순한 스포츠 아나운서가 아니라, 저널리즘적인 성향을 지닌 복합적인 캐릭터였다. 그래서 하루 종일 YTN을 틀어놓고 앵커들을 따라 하기도 하고, 스포츠 채널을 돌려가며 아나운서의 말을 따라 했다. 또 기자분들에 대해서도 공부했다"며 "특히 최희 아나운서가 가장 김영채와 가까운 느낌이 들어서 많이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소진이 외적으로 김영채를 그리기 위해 뉴스 채널을 틀어놨다면, 내적인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캐릭터를 집중 분석했다. 김영채는 병역 문제가 있는 야구 선수를 인터뷰 과정에서 악마의 편집으로 드림즈를 위기에 빠트리는 인물이다. 내면의 서사를 완성하지 않고 표현하기 다소 부담이 있을 터. 박소진은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듯이 캐릭터도 다양하다. 김영채는 자신의 일을 잘 하고 싶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다소 얄미운 모습도 상황적으로 묘사하면 충분히 공감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박소진의 노력과 배우들의 열연, 탄탄한 대본과 세련된 연출이 어우러진 '스토브리그'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19.1%라는 시청률로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은 물론 화제성까지 잡으며 아름다운 결말을 맞았다. 이에 대해 박소진은 "대본을 봤을 때 너무 재밌었다. 첫 방송은 더 재밌었다. 주변에서 스포일러를 해달라고 요청이 쇄도할 정도였다. 그런 관심들이 너무 귀여웠다. 잘 돼서 너무 좋다.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물론 속상하지만, 언젠간 내가 원하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었다"고 기쁨을 표했다.

아이돌에서 배우로 첫 발을 내디딘 박소진에게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박소진이 연기에 대한 열정을 느끼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는 첫 연극이 그 시작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2018년 연극 '러브 스코어'를 했다. 예전에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커서 가수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가수 생활을 하면서 '내가 어디까지 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고민하는 시간도 길었고, 두려웠다. 그냥 삶을 사는 것 자체가 내 목표가 되면 어쩌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던 중 연극을 하면서 열정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 옛날 같은 열정이 타오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런데 연극을 하니 10대, 20대 때보다 더 큰 열정이 타올랐다. 음악에 대한 열정보다 더 컸다. 이런 마음이 생겨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었다"며 "원래 나는 내성적이고 낯도 많이 가린다. 그런데 연극을 하면서 처음 만난 캐릭터가 해맑고 긍정적인 소녀였다. 이걸 준비하면서 내 안의 작은 긍정적인 면이 확대된 것을 느꼈다. 이렇게 다른 캐릭터로 살 수 있다는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극은 일단 관객들이 뭐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온다. 때문에 나는 예뻐 보일 필요도 없고, 어떤 표현을 다 할 수 있다. 관객과 배우 사이의 묘한 공기도 있어 '케미'도 느낄 수 있다. 어떤 캐릭터를 해도 관객들과 호흡을 할 수 있어 더 좋았다"고 덧붙였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박소진은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쳤다. 삶에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는 나이에 만난 타오르는 열정은 소중하기 그지없다. 박소진은 "30대가 되면서 훨씬 여유로워진 것 같다. 이 일을 평생 하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라며 "내가 가수도 늦게 됐다. 이상하게 남들보다 조금 늦는다. 그런데 그게 나인 것 같다. 이게 내 인생의 템포라면, 불만을 굳이 갖는 게 나한테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소진은 "가수였을 때도 스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다. 감사하게도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는 가수였지만,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내 몫을 할 수 있고, 오랫동안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단 걸로 족하다. 만약 그 마음이 식으면 너무 힘들 것 같다"고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무대 위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뽐내던 박소진이 신인배우로 새로운 인생을 연 것이다. 이에 대해 박소진은 "10년 전 나는 지금의 나이가 되면 결혼할 줄 알았다. 더 성숙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이제 연기를 새로 시작하는 입장에서 완벽하지 않음에 매력을 느낀다"며 "그렇기에 앞으로 10년 또한 감히 예측할 수 없다. 사실 뭐 하고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애 엄마가 돼 있을 수도 있다. 물론 40세 전까지는 그럴 일은 없다. 앞으로 4~5년 정도는 배우로 자리를 잡고 싶은 마음"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박소진은 앞으로 굳어버린 배우가 되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는 "알고 싶은 점이 많은 배우가 되고 싶다. 연기든 노래든 계속 변하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 안에서 계속 변화하며 굳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처럼 박소진은 가수에서 배우로 이제 막 포문을 열었다. 조금 느리면 어떤가. 누구보다 진중한 자세와 열정만 있다면 느린 발걸음조차 아름다운 자국으로 남을 것이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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