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수영 기자] 배우 황정민이 오이디푸스 왕이 되어 돌아왔다. 굵직한 연기 내공을 지닌 그가 무대 위에서 펼쳐낼 인간의 번뇌는 어떤 모습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연극 '오이디푸스'(연출 서재형·제작 샘컴퍼니)의 제작발표회가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행됐다. 이날 현장에는 서재형 연출을 비롯해 배우 황정민 배해선 박은석 남명렬 최수형 정은혜가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해 그 사이에서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아 버려졌지만 아무리 벗어나려 애써도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에 대한 이야기다. 진실을 쫓는 인간의 열망과 가혹한 진실 앞에서 행하는 자기 단죄의 숭고한 비극을 담은 희곡이다.

올해 2월 '리차드3세'를 통해 10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던 황정민은 '오이디푸스'로 연기 열정을 이어간다. 이날 서재형 연출은 '리차드3세'에 이어 '오이디푸스'에도 황정민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앞선 작품을 같이 하면서 황정민 배우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연습을 하는지 가깝게 지켜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저 배우랑 비극 작품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운명처럼 기회가 닿아 비슷한 시기에 '오이디푸스'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서 연출은 '오이디푸스' 연출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잘 아실 거다"면서 "오이디푸스가 실제로 운명을 딛고 잘 됐을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연출로서 힘든 일을 딛고 일어난 순간을 소박하지만 담담하고 두껍게 표현하고 싶다. 기대해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연출자로서의 부담감을 고백하기도 했다. 서 연출은 "각 파트에서 잘 하고 있던 배우들을 조련해서 관객들에게 멋진 모습으로 내놓으라는 것은 복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뭔가를 잘못 선택하거나 잘못 이끌면 이 분들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담스럽기도 하다"며 "그러나 잘 끝나서 같이 오랫동안 봤으면 한다. 그 지점을 배우들도 잘 안다"며 웃었다.


'오이디푸스' 팀은 작품과 연기, 함께 호흡하는 배우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오이디푸스에게 폴뤼보스왕의 유언을 전하러 온 사자 역을 연기하는 남명렬은 "1995년도에 '오이디푸스'를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이오카스테 역을 했었다. 고전 작품은 새롭게 변주가 돼 끝없이 재공연된다. 나이가 들면서 다른 배역을 할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연극은 배우 자신이 스스로 편집하고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만큼 어렵지만 해내면 희열이 있다. 그래서 난 무대를 계속 하고 있다"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테베의 고명한 예언자 테레시아스 역을 맡은 정은혜는 팀워크에 만족감을 표했다. '리차드3세'에 이어 '오이디푸스'로 서 연출, 황정민과 재차 호흡을 맞추게 된 그는 "30년 소리꾼을 하다가 배우라는 직함을 얻었을 때 큰 무게로 다가왔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리차드3세'를 하고 나니까 가능한 일이더라"며 "지금은 더 끈끈한 팀워크가 생긴 것 같다. 판소리는 혼자로 오롯이 장시간을 버텨내는데 연극은 그게 아니다. 서로 믿어주는 상호 유대관계 속에서 환상적인 팀워크가 일어난 게 아닌가 싶다"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정은혜는 "아기 울음소리, 버려진 아이라는 말 하나에도 가슴이 미어진다. 오이디푸스가 운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크게 와닿고 있는 것 같다. 훼방하기 위한 예언자가 아니다. 이를 작품에 잘 녹여 풀어내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특히 이날 황정민은 연극 무대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그는 "1년에 한 작품 혹은 1년 반에 한 작품이라도 연극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원캐스트로 무대에 오르는 것에 대해 "전혀 힘들지는 않다. 오히려 새로운 분이 와서 대사를 맞춰주는 게 더 힘들다.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면 단단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원캐스트가 주는 분명한 힘이 있다"고 말했다.


황정민은 '오이디푸스'를 연습하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많이 생각하게 됐단다. "오이디푸스라는 인물을 통해 배우답게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고 입을 뗀 그는 "내가 좋은 배우인지를 늘 자문자답하고 있다. 인간이 운명에 의해 얼마나 간사하게 움직여지는지, 그걸 굳건히 딛고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등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많은 공부가 되고 있다"고 생각을 밝혔다.

끝으로 '오이디푸스' 팀은 연극을 봐야하는 가장 큰 이유로 황정민이 표현해 낼 진한 비극을 꼽았다. 서 연출은 "여러 비극을 보셨더라도 황정민의 비극만큼은 꼭 보셨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황정민 역시 "연기를 통해 제 자신이 왜 이렇게 열정적으로 배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다. 관객분들이 연기를 보면서 말로 표현이 안 된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모든 에너지를 충분히 받아가실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오이디푸스'는 2019년 1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다.




김수영 기자 ent@stoo.com
<가장 가까이 만나는, 가장 FunFun 한 뉴스 ⓒ 스포츠투데이>
<가장 가까이 만나는, 가장 FunFun 한 뉴스 ⓒ 스포츠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