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전도연이 출연했다는 것만으로도 온 영화계가 이목을 집중한다. ‘밀양’으로 ‘칸의 여왕’에 오른 전도연. 그가 선망의 대상에서 한 걸음 나와 스스로의 존재를 입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흥행과 대중성보다는 작품과 철학을 선택했다. 전도연의 필모그라피가 더욱 빛나는 대목이다. 이른바 왕관의 무게, 숱한 배우들이 원하는 수식어지만 그만큼의 책임감이 요구되는 자리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전도연에게 어울리는 표현이기도 하다.

지난해 ‘생일’로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냈던 전도연이 세련된 악역으로 돌아왔다. 1년도 채 안 되는 공백기지만 전도연에게 전작의 얼굴은 없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이하 ‘지푸라기’)은 전도연의 새로운 대표작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푸라기’는 인생 마지막 기회인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최악의 한탕을 계획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극이다. 당초 12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확산으로 인해 19일 개봉한다. 극 중 전도연은 어두웠던 과거를 숨기고 새롭게 살아가는 연희 역을 맡았다. 연희는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헛된 희망을 이용하는 인물이다. 또 작품 속 연희(전도연)와 태영(정우성)의 묘한 감정선은 보는 재미를 끌어올린다.

먼저 전도연은 영화를 본 소감으로 “러닝타임이 순식간처럼 느껴졌다. 촬영이 짧아 아쉬움이 크다. 태영(정우성)과 연희의 설정이나 관계성이 좋았다. 이렇게 해도 영화가 나올 수 있겠다 싶었는데 너무 좋을 때 끝난 기분”이라 전했다.

전도연이 선택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장편으로는 처음 도전장을 내민 신인 감독의 작품이다. 이에 많은 이들이 물음표를 갖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이 작품을 선택한 것도 제가 처음부터 나오지 않아서였다. 굉장히 새롭다고 생각했다. 극 중 모두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극 중 연희는 러닝타임이 약 한 시간이 지난 후에 등장하지만 존재 만으로 압도적인 아우라를 내뿜는다. 이후 연희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지푸라기'는 쉴틈없는 전개로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특히 과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살기 위해 남의 것을 탐하는 연희의 욕망이 작품의 중심이라 여겨질 만큼 그의 존재감은 꽉 찬다.

이를 두고 전도연은 “연희의 캐릭터는 시나리오부터 강렬했다. 많은 이야기가 연희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최대한 덜 부담스럽게 하려 했다. 힘은 오롯이 의상으로 줬다. 이미 설정이 강했기 때문에 열연할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가려 했다. 외적으로도 중간 지점을 찾았다. 어떤 옷을 갖다 놔도 이미 연희기 때문에 그 지점을 찾아야 했다”며 연기적으로 고심한 부분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첫 인상은 어땠을까. 전도연은 ‘지푸라기’의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를 회상하며 “사실 구도가 너무 재밌었다. 뻔한 이야긴데도 뻔하지 않게 스토리를 풀어갔다. 모든 배우가 시나리오에서 모두가 내가 주인공이라 말하더라. 미리 출연을 결정한 후 이 대본을 매력적이게 느끼는 배우들을 기다렸다”며 “재밌게 읽었다. 스릴도 있다. 솔직히 원작을 읽지 않았다. 보게 되면 떼놓고 생각을 못 한다. 이미지가 계속 연상된다. 기존 이미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연희를 소시오패스로 바라보고 연기했다. 나는 배우기 때문에 캐릭터에 몰입하려 한다. 누군가를 계속 이해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연희는 반대다. 한 순간도 남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는 다른 캐릭터지만 연희가 독특하고 또 재밌었다”고 전했다.

그의 말대로 극 중 연희는 어두웠던 과거를 숨기고 살아가는 담담한 모습부터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어떤 짓이든 저지르는 강렬한 모습까지 때와 장소에 따라 변화하는 카멜레온 같은 인물이다. 그러면서 전도연은 현장이 낯선 신인 감독이 자신에 대한 부담감을 지우게끔 노력했다. 전도연은 “김용훈 감독에게 나에 대한 부담감을 갖지 말라 했다. 이미 연희는 캐릭터로 완성됐기 때문이다. 연희는 전도연이 아니어도 누가 해도 이미 연희였다. 최대한 힘 빼고 연기하려 했던 이유다. 상황과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미 완성됐다. 캐릭터적으로 고민을 덜 하며 있는 그대로만 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대본으로 충분히 완성된 캐릭터 덕분에 연기적인 고충 역시 적었다고. 이에 대해 전도면은 “연기하며 힘들다고 생각한 건 따로 없다. 그저 자나 깨나 작품에 대한 우려가 있다. 너무 많은 배우들이 나온다. 신인 감독이 얼마나 부담스럽겠냐. 각자 이야기를 가지고 현장에 나온다. 윤여정 선생님도 제가 캐스팅했는데 영화 못 찍으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감놔라 배 놔라 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예고편 보고 사람들이 너무 재밌을 거라 했는데 더 불안했다. 결국에 잘 나와서 다행”이라 여유로운 모습 이면에 깔린 우려를 전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칸의 여왕’의 나라 한국에서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진출과 4관왕의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전도연은 “저도 깜짝 놀랐다. 각본상은 조금 시시하다 생각했다. 칸에서 수상했을 때 감독님과 송강호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축하한다고 말을 하지 못할 정도다. 축하한다는 말로 될까 싶다”며 경외심을 드러냈다.

이에 자연스럽게 전도연을 항상 따라다니는 ‘영화제의 여왕’이라는 표현에 대한 소감이 이어졌다. 제18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제35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여우상, SBS 연기대상 대상, 제43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 제6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주연상, 제60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제67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 등 빼곡한 전도연의 이력. 이에 대해 전도연은 “수식어가 부담스러운데 이제는 칭찬일까 싶기도 하다. 칭찬들이 제 개인적으로 좋을 수는 있다. 하지만 대중에게 거림감이 생기지 않길 바랐다. 영화제와 전도연이라는 표현이 붙는다면 관객들이 내 작품을 무겁게 느끼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토로했다.

“드라마도 무거운 주제 말고 가볍고 재밌는 것을 하고 싶다. 그런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까지는 어두운 이야기들만 들어온다. 작년 영화 ‘백두산’ 특별 출연에 대해 모두가 신선하다고 느끼더라. 주변 사람들에게 말도 안 했다. 관객들이 새롭게 저를 생각하길 바란다. 부담스러운 작품을 그만하고 싶다. 변화하는 것을 계속 보여주고 싶기도 한데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매년 쉴 틈 없이 작품을 선보였고 그때마다 새로운 얼굴로 관객을 사로잡아왔다. 작품의 스케일, 역할의 스펙트럼 등 한계를 뛰어넘은 전도연의 대표작은 그렇게 새로이 만들어진다. 그의 고민과 철학은 ‘칸의 여왕’이라기 보다는 그저 현재에 충실하고 또 앞을 바라보는 배우의 한결 같은 지점이기도 했다. 전도연의 필모그라피는 지금도, 앞으로도 채워갈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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