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동=스포츠투데이 이서은 기자] "은퇴하기 전에도 기량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계속 발전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초등학교 입학 전 김연아의 2010 벤쿠버 올림픽 연기를 보고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했던 어린 소녀는 12년 뒤 '우상'이 올랐던 올림픽 무대 위에 당당히 섰다.

김예림(단국대)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싱글에서 도합 202.63점(쇼트 67.78점, 프리 134.85점)으로 9위에 올랐다.

꿈에 그리던 자신의 첫 올림픽 무대에서 값진 9위를 기록한 김예림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울지 않았다. 심적으로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최선을 다했고 오히려 올림픽 무대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올림픽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훈련에 매진하는 김예림을 3일 서울 태릉 훈련장 근처에서 스포츠투데이가 만났다. 쇼트프로그램을 마치고 씩씩하게 걸어 나오던 모습처럼 여전히 당차고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베이징 올림픽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김예림은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후로 항상 꿈에만 그리던 무대였기 때문에 오히려 금방 지나간 것 같다"며 "즐겁고 소중한 기억이었다. 올림픽 때의 기분을 더 느끼고 싶어서 영상을 더 찾아 보고 있다"고 밝게 웃었다.

첫 올림픽 무대였음에도 긴장보다는 설렘과 기대가 더 많았다고. 김예림은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좋고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간절히 바래왔던 시합이었기 때문에 즐기고 싶었다"고 전했다.

간절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올림픽 무대. 대회 전 목표에 대해 김예림은 "성적으로 보자면 클린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싶었고, 스스로 어느 시합보다 후회 없는 경기를 하는 게 목표였다"며 "만약 TOP10에 들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만약 좋지 못한 수행이었어도 시합 내내 행복했던 모습으로 영상으로 남으니까. 웃는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김예림의 연기는 차분하고 깔끔한 동작과 아름다운 웃음으로 완성됐다. 그는 "표정에 신경을 많이 썼다"며 밝게 웃어 보였다.

김예림은 김연아의 벤쿠버 올림픽을 보고 피겨스케이팅에 입문한 '연아 키즈'다. '우상' 김연아의 이야기가 나오자 김예림의 눈빛이 반짝였다.

닮고 싶은 점을 꼽아 달라는 말에 그는 "하나만 꼽기는 힘들다. 모든 면에서 닮고 싶다는 생각이다"라고 전했다.

김예림의 베이징 대회 쇼트프로그램 음악인 프란츠 리스트의 '사랑의 꿈'은 김연아의 추천곡이었다. 그는 "쇼트프로그램 안무를 갑자기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생각해 둔 음악이 없었어서 (김)연아 언니에게 물어보면 좋은 해결 방안을 제시해주실 것 같았다"며 "흔쾌히 골라주셔서 그 곡으로 선곡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예림은 "시합할 때 거의 연락을 해 주신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는 빠지지 않고 축하 문자를 보내주셔서 꾸준히 관심을 가져 주신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다"고 웃어 보였다.

우상이 섰던 올림픽 무대를 선수 생활 내내 간절히 바래왔었던 김예림은 행복한 모습으로 연기를 마친 뒤 예상치 못한 별명을 얻게 됐다. 쇼트프로그램을 끝낸 후 우아하게 인사한 뒤 씩씩한 표정과 함께 당당히 걸어 나오는 반전의 모습으로 '피겨 장군'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이에 대해 김예림은 "평상시에도 털털하다"며 "올림픽이다 보니 행복한 모습으로 영상을 남기고 싶어 그 어떤 때보다 표정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래서 연기가 끝난 뒤에는 무의식적인 평상시 모습이 나왔다"며 웃었다.

그는 "평소에도 의식해서 꾸미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았고, 마지막 수행이었던 세 번째 점프가 스스로도 조금 아쉬워서 그랬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인들의 연락도 많이 받았다고. 김예림은 "평상시 알고 지내던 지인들도 '장군님'이라고 부르고,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이나 지인들도 '장군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고 역시 올림픽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었다.

첫 올림픽이었던 만큼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는 김예림은 "평상시였으면 컨디션 조절을 위해 안 했을 것들을 했다. 쇼트트랙 시합도 응원하러 갔었고, 사실 프리스케이팅 경기 당일에도 시간이 있어서 마스코트 '빙둔둔' 인형을 사러 기념품 샵을 갔었다"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이번 대회에 쇼트트랙 선수들과 안면을 트고, 피겨스케이팅 선수들과는 우애가 깊어졌다고. 김예림은 "그동안 쇼트트랙 선수들과는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이번 올림픽 시합 후에는 인사하고 가벼운 이야기도 나누면서 다음에 인사할 정도로 친해졌다"며 "피겨 선수들과는 원래도 친했지만 더 우애가 깊어졌다. 특히 유영(수리고) 선수랑 전보다 더 끈끈해졌다"고 밝혔다.

고대하던 올림픽 무대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김예림은 지난 1월 베이징 대회 출전권이 걸린 국가대표 선발전 도중 허리 부상을 당했다.

1차 선발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던 김예림은 2차 선발전 전 훈련에서 허리를 삐끗했다. 김예림은 "그때 허리가 계속 안 좋았었다. 큰 시합이다 보니까 긴장도 많이 했고 예민했기 때문에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는 "전날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다음날 아침에 경기 전 연습을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5분 밖에 훈련을 하지 못하고 병원으로 갔다"며 "지금은 잘 마무리됐지만, 당시에는 출전 여부조차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심적으로 정말 힘들었다"고 전했다.

김예림은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출전하는 투혼을 발휘한 끝에 2위를 기록, 2위까지 주어지는 베이징행 티켓을 획득했다. 시합을 앞두고 걱정하는 가족을 다독이는 한편, 그 또한 힘을 얻었다. 김예림은 "어머니가 그때 병원에 동행하셨는데, 나보다 더 슬퍼하셨다.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 오히려 '할 수 있을 거야'하며 어머니를 안심 시켰다. 코치님들은 저한테 용기를 주셨다. 그래서 시합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베이징 대회 이후 곧바로 치러진 제103회 동계체육대회 여자 대학부 경기에서 압도적인 점수로 우승을 차지한 김예림은 더 큰 도약을 준비 중이다.

김예림은 "꿈의 무대인 올림픽에도 출전했고, 이제 스무 살이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 더 잘 하고 싶다. 고난이도 점프도 시도해 볼 수 있고, 예술적인 부분이나 스핀, 스텝을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앞으로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는 3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김예림은 "작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스스로 아쉬웠던 부분을 떨쳐내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시즌 마지막 시합인 만큼 컨디션 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회를 앞두고 힘든 훈련 스케줄을 소화하는 김예림이지만, 올해 스무 살의 대학생 새내기이기도 하다. 그는 "개강으로 학교를 처음 가 봤는데, 학교를 가면서도 '왜 내가 벌써 대학생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는 실감이 안 난다"며 맑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김예림은 새내기에서 다시 '국가대표 선수'로 돌아왔다.

"사실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 다가오는 올림픽과 시합들이 중요했다. 하지만 올림픽 이후에는 꾸준히 성실하게 발전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은퇴하기 전에도 기량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계속 발전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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