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스포츠투데이 이한주 기자] "메달을 땄던 평창 대회보다 이번 올림픽이 선수로서 가장 행복하고 좋은 시간이었어요"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다.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말이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김보름이 그랬다. 김보름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여자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은메달을 차지했지만 앞서 열린 팀 추월 종목에서 '왕따 주행' 논란에 휩싸이며 날선 비판을 받았다. 메달을 딴 뒤 큰절로 사죄를 했지만,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이후 김보름은 평창 올림픽 이후 진행된 문화체육관광부의 특별감사에서 고의성 의혹을 벗었다. 하지만 오해를 완전히 풀기 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식사를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삶이 피폐해졌다. 가족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김보름과 그의 어머니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런 힘든 상황에도 마음을 추스린 김보름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매스스타트에 나서 최종 5위를 달성했다.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환호를 들으며 경기를 마친 김보름은 "사람들이 날 응원해 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해줘서 포기할 수 없었다"고 또다시 눈물을 참지 못했다.

올림픽 무대에서 항상 좋은 성적을 올렸음에도 매번 눈물만 보였던 김보름은 최근 미소를 되찾고 온전히 자신의 레이스에 집중하고 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후 열린 제103회 동계체육대회에서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 추월과 1500m, 3000m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낸 뒤 밝게 웃었다. 환한 미소를 되찾은 김보름을 스포츠투데이가 만나봤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태극마크를 달기 시작한 김보름은 2014년 소치에서 개인 첫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1500m와 3000m에서 각각 21위, 13위를 기록한 김보름은 팀 추월에서 8위의 성적을 내며 세계 무대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전성기에 접어든 김보름에게 2018년 큰 시련이 닥쳐왔다. 평창 동계올림픽 팀 추월 준준결승전에서 노선영-박지우와 팀을 이뤄 출전해 노선영과 큰 거리 차이를 내며 결승선에 먼저 들어와 '왕따 주행'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회가 끝나고 진행된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로 의혹을 벗었지만 김보름에게는 여전히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평창 트라우마'가 끊임없이 김보름을 괴롭혔고 국민 대부분의 시선도 여전히 싸늘했다.

그는 "4년 전에는 너무 힘들었다. 4년이라는 시간 중 단 하루라도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며 "실제로 6개월 정도는 운동을 쉬었다. 하지만 스케이트라는 것이 정말 나에게는 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김보름을 다시 일으킨 것은 주위 사람들이었다. 그는 "혼자 이겨내려고 했고 혼자 무너질 때도 많았다. 그러나 주변에서 너무 좋은 말씀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 분들 때문에 포기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스케이트화 끈을 동여맨 김보름은 2021-2022시즌 국가대표 선발전 3000m에서 1위에 오르며 여유롭게 대표팀에 승선했다. 이후 진행된 2021-2022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1-4차 대회에서는 여자 매스스타트 월드컵 랭킹 8위에 이름을 올리며 베이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힘든 시간을 견뎌낸 김보름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최종 5위라는 '메달보다 값진'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는 "세 번 올림픽을 나갔었고 올림픽 메달은 지난 2018년 평창 대회에서 땄지만 이번 (베이징) 올림픽이 가장 저에게 있어 기억에 남는 대회였다"며 "메달을 땄을 때보다 베이징에서 더 기뻤고 행복했다. 가장 기억에 남을 대회인 것 같다. 4년 동안의 힘든 시간을 이겨낸 뒤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스케이트장을 달렸다는 자체가 너무 행복한 기억이었다. 다시 한 번 응원해주신 팬들께 감사드린다"고 활짝 웃었다.


오해에서 벗어난 김보름에게 당시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은 최근 사과와 많은 응원을 하고 있다. 그는 "저한테 사과해주시는 분들을 만나거나 사과의 뜻을 담은 메시지를 읽으면 마음의 웅어리가 풀리는 기분"이라며 "그런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고 전했다.

지난 16일 김보름은 노선영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정을 받으며 마음의 짐을 덜어냈다. 그러나 노선영 측은 곧바로 항소를 제기했다.

김보름은 이에 대해 "심문에서 상대 측의 잘못이 인정돼서 일부 승소 판정이 났다. 진실은 이미 나와 있고 정해져 있다"고 힘줘 말했다.

김보름의 시선은 이제 4년 뒤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밀라노로 향해 있다. 그는 "4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앞으로 4년 동안에도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한 해, 한 해 집중해서 운동을 하고 싶다"며 "4년 동안 힘든 일을 겪어왔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당차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보름은 "이번 올림픽에서 너무 많은 응원을 받았고 응원 한 마디, 한 마디가 저에게 너무 많은 힘이 됐다. 선수로서 행복했고 좋았던 시간들이었다"며 "성원해 주신 만큼 좋은 선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환하게 미소지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스포츠투데이 이한주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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